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미 도허티 (문단 편집)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 [[파일:external/manutd24.files.wordpress.com/tommy-the-doc-docherty-in-001.jpg]]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한 도허티의 첫번 째 경기는 다름 아닌 맨유의 철천지 원수 [[리즈 유나이티드]]였고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당시 맨유는 선수진의 나이가 대부분 30대 중반인 노인정이어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허티는 일단 1972-73 시즌엔 맨유를 1부 리그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다음 시즌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해 결국 강등되고 말았다. 다행히 맨유는 다음 시즌엔 분전하여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여 1부리그로 귀환했다. 1975-76 시즌, 도허티는 맨유를 리그 3위로 이끌었고 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사우스햄튼에게 1:0으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정작 FA컵을 우승한 사우스햄튼은 그 시즌에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도허티는 1977년에 다시 한 번 FA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이번엔 리버풀을 2:1로 제압하여 우승을 달성했다. 이 우승은 당시 리그와 유로피언 컵 우승을 달성하며 트레블을 노리던 리버풀의 야망을 꺾어버리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컸다. 이렇듯 도허티는 침체되던 맨유의 분위기를 되살려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분전하고 있었으나... [[파일:external/www.thesundaytimes.co.uk/The-doc-ready-to-go_6761a.jpg]] 토미 도허티와 메리 브라운 1977년 여름, 그는 엄청난 추문에 휩쓸리고 말았다. 당시 맨유의 물리치료사 로리 브라운에게는 아내 메리 브라운이 있었다. 도허티는 개인적으로 로리 브라운과 절친한 사이었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의 집에 가서 담소를 나누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친구의 아내에게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도허티는 메리와 자주 밀회를 가졌고 얼마 안가 서로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숨기려고 했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세상에 폭로되고 말았다. 도허티는 맨유의 위신을 손상시킨 죄로 경질되었고 그 뒤를 이어 前 첼시 감독이었던 [[데이브 섹스턴]]이 부임했다. 이후 도허티는 1949년부터 수십년간 함께해온 아내와 이혼하고 마침 남편과 이혼한 메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현재까지 부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